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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와 용의자 여인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이 작품은 미스터리와 멜로, 그리고 박찬욱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형사 ‘해준’(박해일)과 용의자 ‘서래’(탕웨이) 사이의 금지된 감정을 따라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 곳곳에 숨겨진 복선과 의미가 존재한다. 이번 리뷰에서는 헤어질 결심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다양한 상징과 복선을 분석해보겠다.
1. 안개와 산, 공간이 의미하는 것
산과 바다: 사랑의 시작과 끝
영화에서 ‘산’과 ‘바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산’은 해준과 서래가 처음 만나는 장소이자, 사건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산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의미하며, 형사인 해준이 사건을 조사하며 서래를 관찰하는 위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 반면 ‘바다’는 서래의 감정이 완전히 드러나는 공간이다. 바다는 끝없는 수평선을 가졌고, 영화 속에서는 해준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서래의 선택과 연결된다.
안개: 불확실한 감정의 표현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안개는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 안개는 시야를 흐리게 하고, 방향을 잃게 만든다. 이는 해준이 서래를 향한 감정을 깨닫는 과정과 유사하다.
- 서래 또한 안개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오가며 해준에게 혼란을 준다.
-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안개가 짙어지는 연출은, 그들의 관계가 명확해질수록 현실과 도덕적 갈등이 희미해지는 느낌을 준다.
2. 반복되는 대사와 소품 속 숨은 의미
"당신은 잠을 잘 자나요?" – 해준의 불면과 서래의 의미
해준은 극 초반부터 ‘불면증’을 겪는 인물로 설정된다. 하지만 서래와 함께할 때 그는 쉽게 잠들며, 이는 그녀가 그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 서래가 해준에게 “잠을 잘 자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이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그녀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이자 애정 표현이다.
- 후반부에서 해준이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는 장면은 서래가 그의 곁에 없음을 의미하며, 그녀의 부재가 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녹음기와 스마트폰 – 감시와 기록의 의미
영화에서 해준과 서래는 스마트폰과 녹음기를 통해 서로를 감시하고 기록한다.
- 해준은 형사로서 서래를 감시하지만, 이는 점점 그녀를 향한 관심과 집착으로 변해간다.
- 서래는 해준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반복해서 들으며 그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한다.
- 이러한 소품은 ‘사랑의 기억’과 ‘기록’의 의미를 가지며, 두 사람의 관계가 감시에서 애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3. 서래의 마지막 선택과 결말의 해석
서래는 왜 스스로 사라졌을까?
영화의 결말에서 서래는 해준이 절대 자신을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바다에 몸을 숨긴다. 이를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그녀가 해준을 위해 선택한 사랑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서래는 해준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자신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하기보다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다.
- 바다는 산과 달리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공간이며, 이는 그녀의 결단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 해준은 그녀가 사라졌음을 인지하지만, 바다 속 그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깊은 허망함과 사랑의 상실을 느끼게 된다.
결론: 사랑과 집착, 그리고 미완의 감정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사랑과 집착, 도덕적 갈등이 얽힌 복합적인 영화다. 공간, 소품, 반복되는 대사와 대사 속의 의미가 정교하게 짜여 있으며,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가 아닌, 미스터리와 멜로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이며, 이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숨겨진 복선과 상징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본다면, 이전에 놓쳤던 세밀한 요소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